액션러닝 창시자 레그레반스 (Reg Revans)가 영국 국가대표 멀리뛰기 선수였다고?
레반스는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영국 국가대표 멀리뛰기 선수였고 대회에서 32위에 입상했습니다. 또한 1930년 대영제국 게임 (At the first British Empire Games)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은메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출처 : Wikipedia)
이번 포스팅에서는 액션러닝 창시자 레그 레반스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은 Yury Boshyk, Robert L. Dilworth가 공저하고 김혜정, 조연주, 이승희가 공역한 [액션러닝 역사와 진화] 책을 바탕으로 요약정리한 내용입니다.
레반스 소개 (14 May 1907 – 8 January 2003)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물리학자였으며 동시에 경제학자이자 교육자였습니다. 퀘이커 교도이자 평화주의자로서 절제하는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액션러닝을 처음 도입한 창시자로 클루터버크(Clutterbuck)와 크라이너(Crainer)가 집필한 '경영을 만드는 사람들 : 비즈니스 세계를 바꾸다 (Makers of Management: The men and women of who changed the business world)' (1990)라는 책에서 현대 경영에 가장 크게 기여한 24명 중 한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Amazon]
유년시기
레반스는 1907년 5월 14일 잉글랜드 포츠머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레반스의 아버지는 메르캔틸 선박의 수석조사관으로 타이타닉 재난에 대한 조사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어린 레반스는 많은 선원들이 그의 가족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가난했기 때문에 맨발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레반스의 유년시절을 얘기할때 레반스 아버지의 타이타닉 재난조사에 대한 얘기가 많이 언급됩니다. 레반스는 아버지에게 타이타닉 비극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물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가 영리함(여기서 말하는 영리함은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과 지혜를 구분하는 법임을 알게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또 레반스는 프로렌스 나이팅게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나이팅게일입니다)이 사망했을때 어머니가 동료 간호사와 함께 추모식에 참여했던 광경을 기억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제 나름 해석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충을 돌아보고자 했던 레반스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이 레반스가 성인이 되어서 이타적인 마인드를 갖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생시기
레반스의 삶을 얘기할때 캠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소에 근무했던 시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캐번디시 연구소에 근무하는 30-40명의 연구자중 12명 이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일만큼 그곳은 우수한 두뇌가 모여 있는 집합체였습니다.
레반스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자 모임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앎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알고 있는 부분과 모르고 있는 부분(이해의 경계)을 확인하고 이 과정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경청의 바탕 안에 진행되고 있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은 레반스가 액션러닝의 틀을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국영석탄회사 (1945-1950)
레반스는 광부로 구성된 팀과 함께하면서 관리자의 지시기 아니라 광부 스스로 작업 방식을 설계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함께 현장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서 더 잘 배울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 계기입니다. 액션러닝이 태동된 순간입니다.
맨체스터 대학 (1955-1965)
레반스가 맨체스터 대학 산업행정학 교수로 재직했던 기간입니다. 레반스는 이 기간 중 맨체스터 지역의 간호사들이 훈련기간 동안 이탈하는 문제를 담당해 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레반스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교육보다 간호사들과 훈련생이 함께 차를 마시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신뢰가 형성되고 이때 더 많은 학습이 이루어짐을 확인했습니다. 서로 함께 배우는 과정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벨기에 시기 (1965-1975)
브뤼셀에 있는 산학협력재단에서 일하고 있던 레반스가 대학간 고위 협력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이행하던 시기입니다. 1968년 당시 경제 실적 면에서 OECD 국가중 최하위에 머물던 벨기에의 경제성과 향상을 위하여 5개 대학과 23개의 기관이 협력한 프로그램입니다. 액션러닝은 벨기에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문제해결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액션러닝이 국가 단위 프로젝트에 활용된 사례입니다.
병원커뮤니케이션 개선 프로젝트 (1964-1965)
런던 내 10개의 병원이 참여한 병원 커뮤니케이션 개선 프로젝트 (HIC : Hospital Internal Communication) 입니다. 벨기에 프로젝트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병동들이 주로 참여했고 산부인과 병동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실험군 대조군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액션러닝 시행 효과성에 대해서 통제된 비교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액션러닝이 가지는 가치가 별견되었습니다.
하이어 다운스에서의 생활
1974-1975년에 레반스는 벨기에를 떠나 영국에 영구히 정착했습니다. 레반스는 이때 GE의 임원 프로그램의 고문이었습니다.
후에 LG 전자가 GE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한국에 액션러닝을 처음 도입했기 때문에 한국의 액션러닝 출발의 끈을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일들
1995년 맨체스터에 있는 살포드 대학에 액션러닝 연구를 위한 레반스 액션러닝연구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1995년 영국 히스로에서 액션러닝 상호협력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레반스의 마지막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도 레반스는 치열하게 대화하고 토론하고 성찰하였습니다. 평생을 액션러닝을 삶으로 실천했던 레반스는 2002년 크리스마스때부터 깊은 잠에 빠졌으며 2003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반스 삶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원하시면 아래의 도서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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